페르시아의 점

한 이름 아래 넷. 우리가 계산하는 건 그중 하나예요.

이 이름이 덮고 있는 것

‘페르시아의 점’은 하나가 아니에요. 적어도 넷을 덮고 있어요. 하페즈 시집을 아무 데나 펼쳐 그 자리의 시구를 읽는 팔에하페즈, 커피 잔에 남은 모양을 읽는 커피점, 페르시아 점성가들이 아랍을 거쳐 라틴 세계로 넘긴 행성 주기 체계, 그리고 점을 찍어 형상을 만드는 일름 알라믈이에요.

복키가 계산하는 건 이 넷 중 정확히 하나예요. 이 글의 나머지는 그게 무엇이고, 어떻게 계산하고, 나머지 셋은 왜 안 하는지에 대한 거예요.

우리가 계산하는 하나 — 일름 알라믈

일름 알라믈(ʿilm al-raml)은 ‘모래의 학문’이라는 뜻이에요. 9세기 무렵 아랍어권에서 모양을 갖췄어요. 모래에 점을 찍고 홀·짝을 세어 형상으로 묶는 방식이에요. 복키의 세계 지도는 이 전통을 아라비아에 꽂아 둬요. 시작한 자리가 거기라서예요 — 지도와 글이 다른 말을 하면 그게 제일 나쁘니까 글도 같은 말을 해요.

다만 이 기술이 길게 다듬어진 곳은 페르시아예요. 점치는 사람을 뜻하는 페르시아어 람말(rammāl)은 지금도 일상어이고, 라믈이 인도로 건너가 ‘라말’이 된 길도 페르시아 문화권을 통해서였어요. 12세기에는 라틴 유럽이 같은 기술을 받아 게오만티아라고 불렀고요. 형상 열여섯 벌은 하나인데, 그것을 두고 여러 언어가 몇 세기 동안 주석을 붙인 셈이에요.

복키는 이걸 어떻게 던지나

형상 하나는 네 줄이에요. 위에서부터 불·바람·물·흙으로 읽고, 각 줄은 점 하나(홀, 능동) 아니면 점 둘(짝, 수동)이에요. 두 상태짜리 줄이 넷이니 형상은 정확히 열여섯 개예요. 더도 덜도 없어서 이 기술 전체가 컴퓨터의 4비트에 딱 들어가요.

복키는 먼저 네 어머니를 뽑고, 나머지는 고전 방식 그대로 끌어내요. 네 딸은 어머니들을 전치한 것이에요 — 열이 행이 돼요. 네 조카와 두 증인, 마지막 심판관은 각각 바로 위 두 형상을 줄별로 더한 값이고, 이때 홀 더하기 홀은 짝이에요. 이 덧셈은 정확히 배타적 논리합(XOR)이라, 고전이 말하는 검산 규칙이 우리 코드에서도 그대로 성립해요. 심판관의 활성 줄 수는 언제나 짝수예요. 화해자는 심판관에 첫 어머니를 다시 더한 값이고요.

그리고 여기가 정직하게 말해야 하는 대목이에요. 네 어머니는 당신 손이 모래를 친 결과가 아니라, 오늘 날짜와 당신이 적어 넣은 말을 씨앗으로 삼는 결정적 생성기가 뽑아요. 그래서 같은 날 같은 질문은 같은 형상을 주고, 내일은 다른 형상을 줘요. 던진 것이 아니라 재현 가능한 추첨이에요. 더 따뜻하지만 사실이 아닌 말보다 이쪽을 아시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적지 않은 열여섯 개의 이름

복키의 지오맨시 화면에서 형상들은 라틴어 이름을 달고 있어요 — Via, Populus, Carcer, Coniunctio처럼요. 라틴어가 이 기술의 본래 언어여서가 아니에요. 12세기 유럽이 번역해 넣은 언어일 뿐이에요.

아랍어 이름과 페르시아어 이름은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화면에 올리지 않았고, 아랍어·페르시아어 화면이 그 이유를 자기 말로 적어 둬요. 우리 코덱에는 열여섯 개를 출처와 대조한 표가 아직 없고, 확인하지 않은 이름을 열여섯 개 적는 건 계산이 아니라 지어내기라서예요.

이 선택에는 실제로 값이 있어요. 아랍어나 페르시아어를 쓰는 사람이 자기 전통을 남의 이름표로 만나게 되니까요. 그래도 추측을 인쇄하느니 그 값을 치르는 쪽을 골랐어요. 출처를 댄 표가 생기는 날 이름은 바뀔 거예요.

우리가 계산하지 않는 것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건 팔에하페즈인데, 복키는 그걸 하지 않아요. 이유가 둘이고 두 번째가 보기보다 중요해요. 첫째, 그 의식은 손에 든 책이에요. 시집을 펼쳐서 눈앞에 있는 것을 읽는 일이에요. 둘째, 하페즈의 페르시아어 원문은 수백 년 된 것이라 저작권이 없지만,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영어판·한국어판은 전부 번역이에요. 번역은 번역자라는 저자가 있는 별개의 저작물이에요. 남의 번역으로 기능을 만들 생각은 없어요.

페르시아 태양력도 계산하지 않아요. 그 달력의 한 해는 춘분의 정확한 순간에 바뀌는데, 계산하면 아름다울 값이지만 우리는 아직 만들지 않았어요. 지금 복키가 가진 달력은 그레고리력, 24절기가 든 한국 만세력, 그리고 마야의 셈이에요.

피르다리아 — 페르시아 점성술이 아랍과 라틴 전통으로 넘긴 행성 주기 — 도 계산하지 않아요. 이건 우리가 실제로 계산하는 비므쇼타리 다샤와 닮았어요. 정해진 순서의 행성들에게 정해진 햇수를 나눠 준다는 점에서요. 그 닮음이 계보인지 우연인지는 오래 논쟁된 문제이고, 운세 사이트의 각주가 결론 낼 일이 아니에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우리 코드에 든 것이 어느 쪽인가뿐이고, 그건 인도 쪽이에요.

커피점은 복키의 지도에 ‘존중하되 흉내내지 않는 전통’으로 올라 있어요. 잔과 손과 방에 사는 것이지 입력창에 사는 게 아니니까요. 서른 날마다 야자타의 이름이 붙는 조로아스터 달력도 계산하지 않아요.

대신 우리가 한 것 하나

페르시아어는 복키가 쓰는 열세 개 언어 중 하나이고, 지오맨시 화면은 그 언어로 쓰여 있어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페르시아어 문장으로요. 아랍어·페르시아어 형상 이름을 아직 출처와 대조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그 문단까지 포함해서요.

작은 일이에요. 그리고 초대하는 것과, 남을 위해 쓴 페이지를 건네는 것의 차이이기도 해요.

열여섯 형상 던져 보기 →

이어서 읽기

사람들이 실제로 묻는 것

페르시아의 점이란 무엇인가요?

하나가 아니에요. 이 이름은 적어도 네 가지를 덮고 있어요. 하페즈 시집을 아무 데나 펼치는 팔에하페즈, 커피 잔을 읽는 커피점, 페르시아 점성가들이 아랍과 라틴 세계로 넘긴 행성 주기 체계, 그리고 점을 찍어 형상을 만드는 일름 알라믈이에요. 복키가 계산하는 건 이 넷 중 정확히 하나이고, 이 글이 그게 무엇이고 나머지는 왜 안 하는지를 적어요.

일름 알라믈(지오맨시)이 뭔가요?

‘모래의 학문’이에요. 모래에 점을 찍고 홀·짝을 세어, 불·바람·물·흙 네 줄짜리 형상으로 묶어요. 그래서 형상은 모두 열여섯 개예요. 9세기 무렵 아랍어권에서 모양을 갖췄고, 페르시아에서 길게 다듬어졌으며(점치는 사람을 람말이라고 불러요), 인도로 건너가 ‘라말’이 되었고, 12세기에는 라틴 유럽에서 게오만티아가 되었어요.

열여섯 형상은 어떻게 계산하나요?

먼저 네 어머니를 뽑아요. 네 딸은 어머니들을 전치한 것이에요 — 열이 행이 돼요. 네 조카와 두 증인, 마지막 심판관은 각각 바로 위 두 형상을 줄별로 더한 값이고, 홀 더하기 홀은 짝이에요. 이건 정확히 배타적 논리합(XOR)이라 고전의 검산 규칙이 그대로 성립해요. 심판관의 활성 줄 수는 언제나 짝수예요. 화해자는 심판관에 첫 어머니를 다시 더한 값이고요.

복키가 정말로 모래에 점을 찍나요?

아니에요. 그렇게 말해 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네 어머니는 오늘 날짜와 당신이 적어 넣은 말을 씨앗으로 삼는 결정적 생성기에서 나와요. 그래서 같은 날 같은 질문은 같은 형상을 주고, 내일은 다른 형상을 줘요. 던진 것이 아니라 재현 가능한 추첨이에요. 어머니 다음부터는 고전 그대로의 유도이고 무작위가 하나도 없어요.

복키도 하페즈 점을 보나요?

아니에요. 그 의식은 손에 든 책이고, 보기보다 중요한 두 번째 이유가 있어요. 하페즈의 페르시아어 원문은 저작권이 지난 지 오래지만,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영어판·한국어판은 전부 번역이고 번역은 번역자라는 저자가 있는 별개의 저작물이에요. 페르시아 태양력도, 조로아스터 달력의 날 이름도, 피르다리아 주기도 계산하지 않아요. 커피점은 우리 지도에 ‘존중하되 흉내내지 않는 살아 있는 실천’으로 올라 있어요.

형상 이름이 왜 아랍어·페르시아어가 아니라 라틴어인가요?

12세기 유럽이 이 기술을 번역해 넣은 언어가 라틴어이고, 우리가 출처와 대조한 이름표가 그것이라서예요. 아랍어 이름과 페르시아어 이름은 분명히 있지만, 우리 코덱에는 열여섯 개를 출처와 대조한 표가 아직 없어요. 확인하지 않은 이름을 열여섯 개 적는 건 계산이 아니라 지어내기예요. 아랍어·페르시아어 화면이 그 사실을 자기 말로 그대로 적어 둬요. 출처를 댄 표가 생기는 날 이름은 바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