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이란?
예순네 개의 그림, 그리고 그 밑의 산술.
주역(周易)은 물음에 문장이 아니라 그림으로 답해요. 그림은 아래에서 위로 여섯 줄을 쌓은 것이고, 줄마다 이어져 있거나 끊어져 있어서 나올 수 있는 그림이 예순넷이에요. 어떤 줄은 '움직이는 줄', 곧 동효(動爻)라서 반대로 뒤집히기 직전이에요. 그래서 한 번 뽑으면 보통 두 그림을 함께 보게 돼요 — 지금 서 있는 자리인 본괘, 그리고 변해 가는 자리인 지괘. 여기에 예도 아니오도 없어요. 가만히 들여다보라고 주는 상(象)이고, 들여다보는 그 시간이 전부예요.
방법이 둘인데 절대 섞지 않아요. 서로 다른 유파라서 섞는 순간 둘 다 거짓이 되거든요. 매일 열려 있는 '오늘의 괘'는 매화역수(梅花易數) 수기괘법이에요. 두 수만으로 셈해요 — 상괘는 n₁을 8로 나눈 나머지, 하괘는 n₂를 8로 나눈 나머지, 동효는 (n₁+n₂)를 6으로 나눈 나머지. 난수가 없고, 동효는 언제나 정확히 하나이고, 같은 사람은 그날 내내 같은 괘를 봐요. 물음을 던지는 자리는 더 오래된 시초점(蓍草占)이에요. 복키는 실제 손동작을 코드로 그대로 옮겼어요 — 시초 마흔아홉 개에서 시작해 분이(分二)로 둘로 가르고, 괘일(掛一)로 하나를 걸고, 설사(揲四)로 넷씩 덜어내고, 귀기(歸奇)로 나머지를 치워요. 이걸 세 번 해야 한 효고, 여섯 효면 열여덟 번이에요.
시초가 그렇게 만들고, 그 기울기가 곧 가르침이라서 그래요. 위 산술을 그대로 돌리면 노음 1/16, 소양 5/16, 소음 7/16, 노양 3/16이 나와요. 우리가 맞춰 넣은 숫자가 아니라 셈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값이에요. 그래서 양효가 변할 확률이 음효가 변할 확률의 세 배예요 — 양은 잘 움직이고 음은 잘 머물러요. 동전 세 닢으로 하면 1:3:3:1로 반듯해지면서 이 생각이 조용히 지워져요. 복키도 예전엔 동전이었고, 그래서 바꿨어요. 십만 번을 굴려 분포가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검사가 지켜요.
괘를 세우는 건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어디를 읽느냐예요. 그 규칙은 주자(朱子)의 『역학계몽』 「고변점(考變占)」에서 가져왔어요. 동효가 없으면 본괘의 괘사, 하나면 그 효의 효사, 둘이면 두 효사를 보되 위쪽을 주로, 셋이면 본괘와 지괘의 괘사를 함께 보되 본괘를 주로, 넷이면 지괘에서 안 움직인 두 효를 보되 아래쪽을 주로, 다섯이면 지괘에 하나 남은 정효, 여섯이면 본괘가 건(乾)일 때 용구(用九)·곤(坤)일 때 용륙(用六)이고 나머지 괘는 지괘의 괘사예요. 작괘의 확률 산정도 같은 『역학계몽』에서 왔으니, 한 화면 안에서 유파가 섞이지 않아요.
괘사 예순넷과 효사 삼백여든넷이 전부 엔진에 들어 있어요. 통행본과 글자 단위로 대조했고, 구두(句讀)가 갈리는 자리는 주희 『주역본의』를 따랐어요. 한국어와 영어 옮김은 우리가 직접 했어요 — 원문은 공유 재산이지만 남의 번역은 그 사람의 저작물이라서, 현대 역본을 베끼지 않고 한문에서 바로 풀었어요. 지금 옮김이 있는 언어는 한국어와 영어 둘뿐이고, 다른 언어에서는 영어가 보여요.
예/아니오를 말하지 않고, 무엇에도 확률을 붙이지 않아요. 육효(六爻)도 하지 않아요 — 한대 경방(京房)의 납갑처럼 여섯 효마다 간지와 오행을 붙여 '되느냐, 언제냐'를 겨누는 방법인데, 그건 다른 유파이고 복키는 아직 만들지 않았어요. 채택한 규칙 안에도 아는 결손이 하나 있어요. 『역학계몽』은 동효가 셋일 때 스무 가지를 앞 열·뒤 열로 갈라 본괘와 지괘 중 어느 쪽을 주로 볼지 뒤집는데, 그 순서 기준이 계몽의 배괘 표에 딸린 것이라 확신 있게 되살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셋일 때는 언제나 본괘를 주로 두고, 추측 대신 그렇다고 적어 둬요. 그리고 같은 물음을 다시 던지면 같은 답이 돌아와요. 몽괘(蒙)에 초서고 재삼독 독즉불고(初筮告 再三瀆 瀆則不告)라 했으니, 두 번째부터는 새로 뽑지 않고 처음 그 괘를 그대로 보여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