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꿈 해몽
옛 조짐 책에서 거미는 무서운 것이 아니었어요. 작은 기쁨이었습니다 — 지주집이백사희(蜘蛛集而百事喜), 거미가 모이면 온갖 일이 기쁘다. 서경잡기가 나그네를 알리는 까치 옆에 나란히 적어 둔 줄이에요. 집거미를 적는 글자 蟢에는 기쁠 희(喜)가 들어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벌레가 한 칸에 모여 있던 것은 아니에요. 전통을 통틀어 가장 이름난 벌레 꿈은 장자의 나비인데, 그 대목이 하는 일은 길흉이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개미는 남가일몽(南柯一夢) — 한평생의 벼슬살이가 나무 밑 개미집이었다는 이야기이고, 실패가 아니라 규모에 관한 꿈이에요. 그리고 도가가 몸 안에 두었던 벌레는 처음부터 몸 이야기가 아니라 잠든 사이에 오가는 말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서 작다는 것은 나쁘다는 뜻이 아니고, 이 페이지의 어느 줄도 당신의 건강을 읽지 않아요.
벌레라는 칸 위에 놓여 있던 옛 글자 蟲은 지금 말하는 곤충보다 훨씬 넓었어요. 기어다니는 것을 두루 담았고, 꽤 오랫동안 뱀까지 그 안에 있었습니다 — 뱀을 긴 벌레, 장충(長蟲)이라고 불렀으니까요. 다만 뱀은 따로 주소가 있고 거기서 재물과 허물벗기로 읽으니, 작은 것들을 실제보다 크게 들리게 하려고 그 독법을 여기로 옮겨 오지는 않을게요. 옛 책이 벌레를 두고 실제로 한 일은 어느 벌레인지로 나누는 것이었고, 나뉜 답들은 서로 별로 닮지 않았습니다. 거미가 가장 또렷하고, 다행히 좋은 쪽이에요. 서경잡기에 육가의 말이 실려 있습니다 — 까치가 울면 길 가던 사람이 이르고, 거미가 모이면 온갖 일이 기쁘다. 꿈 이야기가 아니라 조짐 이야기지만 둘은 같은 우물에서 물을 길었고, 거기서 거미는 작은 좋은 소식으로 나왔어요. 이름에 독법이 그대로 붙어 있기도 합니다. 집거미를 적는 글자 蟢에는 기쁠 희(喜)가 들어 있고, 손님보다 먼저 오는 기쁨이라는 뜻으로 희자(蟢子)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같은 벌레가 시경에서는 반대쪽 일을 합니다. 빈풍 동산 편에서 삼 년 만에 돌아온 병사에게 시가 집을 보여 주는데, 방에는 쥐며느리가 있고 문에는 거미줄이 걸려 있어요. 흉한 장면이 아니에요. 오래 아무도 드나들지 않은 자리라는 표시일 뿐입니다. 그래서 전통은 둘을 다 쥐고 있어요 — 기쁨이 오고 있다는 거미와, 여기 한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거미. 우리는 듣기 좋은 쪽을 골라 드리지 않고 둘 다 그대로 건넵니다. 나비에 이르면 전통이 아예 점치기를 그만둬요. 그것도 가장 이름난 꿈에서요. 제물론에서 장주가 나비 꿈을 꾸는데, 훨훨 나는 나비였고 깨어 보니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목은 어느 쪽이 꿈이었는지를 끝내 정하지 않아요. 물음을 세워 둔 채로 끝납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이름난 벌레 꿈이 길흉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적어 둘 만해요. 그 꿈은 길흉이기를 거부합니다. 이런 페이지가 그 뜻을 지키는 방법은 그것을 슬그머니 예언으로 바꾸지 않는 것뿐이에요. 개미는 또 하나의 이름난 꿈을 지고 있습니다. 당나라 남가태수전에서 한 사람이 홰나무 밑에서 잠들어 괴안국(槐安國)에서 한평생 벼슬살이를 합니다 — 혼인하고, 한 고을을 맡고, 스무 해를 살고, 자리에서 밀려납니다. 깨어 보니 그 나라는 나무뿌리 속 개미집이었어요. 그것을 남가일몽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여기서 대개 허무를 읽는데, 이야기가 실제로 하는 일은 조금 달라요. 자를 바꿉니다. 개미집만 한 것이 한평생을 담았고, 한평생처럼 느껴진 것이 나무뿌리 밑에 들어갔어요. 당신의 삶이 작다는 말이 아니라, 재는 자를 그대로 믿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람 안에 사는 벌레는 또 다른 계통이고, 이 페이지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해요. 도가에서는 몸 안에 삼시(三尸)라는 세 벌레가 살면서 경신일(庚申日) 밤을 기다렸다가, 사람이 잠든 사이에 하늘로 올라가 그 허물을 고해바친다고 보았습니다. 우리 쪽에서도 이 믿음을 꽤 진지하게 받아들여, 그날 밤에는 자지 않고 앉아 밤을 새웠어요 — 경신수야(庚申守夜). 눈여겨볼 것은 이 믿음이 무엇에 관한 것인가입니다. 병 이야기가 아니에요. 내가 보고 있지 않은 사이에 나에 대한 말이 오간다는 이야기이고, 그건 낯선 옷을 입었을 뿐 아주 흔한 사람의 걱정이에요. 몸에 벌레가 붙거나 몸 안에 있는 꿈을 우리는 그 줄을 따라 읽고, 건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읽지 않습니다. 몸이 걱정된다면 그건 의사에게 가져갈 일이고, 어떤 해몽책도 그 자리를 대신하지 못해요. 마지막으로 누에. 이 문화가 참아 준 정도가 아니라 예를 갖춰 대접한 유일한 벌레예요. 조선의 왕비는 친잠례(親蠶禮)를 지냈고, 선잠단이라는 나라의 제단이 따로 있었습니다. 누에의 한살이는 멈춤과 바뀜으로 이어져 있어요. 허물을 벗고, 먹기를 그치고, 스스로를 싸 버립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 실은 전부가 일어나고 있는 대목이에요. 고치나 허물, 애벌레가 나오는 꿈은 징그러움 쪽이 아니라 그 줄을 따라 읽습니다. 그 모든 자리에서 독법은 설명에 머물러요. 옛 책은 그 벌레가 무엇으로 여겨졌는지를 적었지, 무엇이 온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말하지 않아요.
- 집 안에 거미가 있거나 문에 거미줄이 걸려 있다
- 여기에는 독법이 둘 있고, 옛 책은 두 쪽을 다 남겼어요. 지주집이백사희(蜘蛛集而百事喜), 거미가 모이면 온갖 일이 기쁘다 — 이것이 조짐 쪽 줄이고, 집거미를 손님보다 먼저 오는 기쁨이라 하여 희자(蟢子)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시경은 삼 년 동안 아무도 드나들지 않은 집 문에 같은 거미줄을 걸어 둬요. 기쁨이 오는 중이거나, 오래 비어 있었거나. 우리가 골라 드리지 않고, 어느 쪽도 손님이 온다고 점치지 않습니다.
- 나비가 나오거나, 내가 나비다
- 호접지몽(胡蝶之夢)이에요. 장주가 나비 꿈에서 깨어나 둘 중 어느 쪽이 어느 쪽을 꾸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했고, 제물론은 그 물음을 일부러 열어 둔 채 끝납니다. 전통에서 가장 이름난 벌레 꿈이 길흉이기를 마다한 꿈이라는 뜻이에요. 결과가 아니라, 나와 내가 들어가 있는 것 사이의 금이 헐거워지는 쪽으로 읽습니다.
- 개미 떼·줄지어 가는 개미·개미집
- 남가일몽입니다 — 잠든 나무 밑 개미집이 알고 보니 한평생 벼슬을 살던 나라였다는 이야기예요. 이 이야기가 바꾸는 것은 값이 아니라 자예요. 개미집만 한 것이 한평생을 담았고, 한평생이 나무뿌리 밑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쌓고 있는 것이 하찮다는 판정이 아니라, 한동안 재는 자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쪽으로 읽어요.
- 벌레가 몸에 붙거나 살갗 위를 기어다닌다
- 옛 계통은 삼시(三尸)예요. 도가는 몸 안에 세 벌레가 살다가 경신일 밤 사람이 잠든 사이 빠져나가 그 허물을 고해바친다고 보았고, 우리 쪽에서는 그 밤에 자지 않고 앉아 새웠습니다. 이 믿음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보세요 — 내가 보고 있지 않은 사이에 오가는 말이에요. 우리는 그 줄을 따라 읽고 몸에 대해서는 읽지 않습니다. 이건 건강 해몽이 아니고, 그렇게 만들지도 않을게요.
- 고치·허물·누에·번데기
- 누에는 이 문화가 예를 갖춰 대접한 유일한 벌레예요 — 조선의 왕비가 친잠례(親蠶禮)를 지냈습니다. 그 한살이는 멈춤으로 이어져 있어요. 허물을 벗고, 먹기를 그치고, 스스로를 싸 버립니다. 아무 일도 없어 보이는 대목이 바뀜이 일어나는 대목이에요. 징그러움 쪽이 아니라 그 줄을 따라 읽습니다.
벌레 꿈은 큰 것 하나에 관한 일이 드물어요. 작은 것 여럿에 관한 일이고, 그것들을 다 세어 두지 못한다는 느낌에 관한 일입니다. 그래서 벌여 놓은 일이 챙길 수 있는 양보다 많은 결에 자주 찾아와요. 구석에 거미 한 마리가 있는 꿈과 바닥이 통째로 꿈틀거리는 꿈은 같은 꿈이 아니고, 대개 다른 것은 벌레의 종류가 아니라 수예요. 몸 쪽 층도 있습니다. 살갗은 기어다니는 느낌을 아주 잘 지어내서, 더운 밤이나 흘러내린 머리카락 한 올, 이불 끝만으로도 충분해요. 그 감각이 남은 채로 깨면 꿈이 무슨 기별처럼 느껴지는데, 실은 대부분 신경 쪽 일입니다. 크기도 한몫해요. 우리가 늘 압도적으로 크게 서 있는 상대가 벌레라서, 벌레를 크게 만들거나 나를 작게 만드는 꿈은 사건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균형 감각을 건드리고 있는 거예요. 이 가운데 어느 것도 당신을 채점하지 않습니다. 작은 것이 기어다니면 놀라는 건 거의 모두가 그렇고, 그걸 가져다 쓴 꿈이 당신의 사람됨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벌레 꿈은 나쁜 꿈인가요?
한 칸으로 묶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어요. 옛 책에 그런 칸이 애초에 없었으니까요. 거미에는 온갖 일이 기쁘다는 줄이 붙어 있고, 나비에는 길흉이기를 아예 마다한 대목이 붙어 있고, 개미에는 규모에 관한 이야기가 붙어 있습니다. 벌레였다는 사실보다 어느 벌레였는지가 훨씬 중요해요. 그리고 작다는 것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주장을 작게 잡았다는 뜻이고, 그 점이 정직한 대목입니다.
몸에 벌레가 있는 꿈을 꿨어요. 건강이 안 좋다는 뜻인가요?
아니요. 그렇게 읽지 않습니다. 몸속 벌레 이야기의 뿌리인 삼시(三尸)는 병이 아니라, 잠든 사이에 나에 대한 말이 오간다는 이야기예요. 우리는 꿈에서 건강을 읽지 않습니다 — 꿈은 몸을 볼 수 없고, 볼 수 있는 척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하지 않으려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에요. 몸이 마음에 걸린다면 그건 의사에게 물을 일입니다.
꿈에서 벌레를 죽였어요. 더 나쁜가요?
조짐 쪽 줄은 거미가 온다는 대목에 붙어 있지, 그다음에 손이 무엇을 했는지에 붙어 있지 않아요. 옛 책은 벌레를 적었지 꿈꾼 사람에게 점수를 매기지 않았습니다. 이 페이지의 어느 줄도 꿈속 행동을 당신에 대한 진술로 읽지 않아요. 잠든 사이에 한 일은 당신이 내린 결정이 아닙니다.
구더기나 벌레 떼가 재물이라는 말을 봤는데 맞나요?
널리 도는 말이고, 똥 꿈의 재물 독법이 수가 많은 것 전반으로 옮겨 간 모양으로 보여요. 다만 옛 문헌에서 그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고, 확인하지 못한 것은 페이지에 올리지 않습니다. 어디서 온 독법인지 댈 수 있는 것은 댑니다 — 거미는 서경잡기, 나비는 제물론처럼요. 대지 못하는 것은 옮기기보다 못 댄다고 말하는 편을 고를게요.
여기 적힌 것은 한국 전통 해몽의 독법이지 예언이 아닙니다. 여기서 당신의 미래를 계산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런 척하지 않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