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해몽

연예인 꿈 해몽

두보는 이백의 꿈을 꾸고서 그것을 벗의 안부로 읽지 않았어요. 고인입아몽 명아장상억(故人入我夢,明我長相憶) — 옛 벗이 내 꿈에 들어왔으니, 내가 오래 그리워했음이 분명해진다. 시가 뜻을 잠든 사람 쪽에 놓아 둔 것이고, 이 페이지도 그 자리에 그대로 둡니다. 동아시아에는 높은 사람이 나오는 이름난 꿈이 여럿 있어요. 주공이 더는 꿈에 오지 않는 것으로 자기 쇠함을 잰 공자, 꿈에서 본 얼굴을 그리게 해 나라 안을 뒤진 임금, 가질 수 없던 사람과의 오십 년을 꿈으로 다 살아 버린 승려. 그 어느 것에서도 꿈이 알려 주는 것은 잠든 사람 쪽이에요. 우러르는 그 사람의 마음을 말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우리도 말하지 않습니다. 만난 적 없는 산 사람이 당신의 밤에 나오겠다고 한 적은 없으니, 이 페이지의 어느 줄도 그 사람의 마음이나 선택을 읽지 않아요.

전통은 이렇게 읽습니다

이 계통에서 가장 오래된 꿈은 이제 그 꿈을 못 꾼다는 한탄으로 우리에게 옵니다. 논어 술이 편에서 공자가 말해요 — 심의오쇠야, 구의오불부몽견주공(甚矣吾衰也!久矣吾不復夢見周公). 심하구나 내가 쇠함이여, 오래되었구나 내가 다시 주공을 꿈에서 보지 못한 지가. 무엇을 재고 있는지 보세요. 오백 년 전에 죽은 주공이 아니에요. 자기 자신입니다. 그는 그 사람이 세운 것을 되살리는 데 한평생을 썼고, 그 일이 자기 안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사람이 잠 속으로 찾아왔어요. 꿈이 그치자 그것을 자기 상태를 재는 잣대로 삼았습니다. 전통이 계속 돌려주는 모양이 이것이에요. 꿈에 나온 높은 사람은 재는 도구이고, 읽히는 쪽은 꿈꾼 사람입니다. 꿈이 오지 않는 것까지 그렇게 읽었다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해요 — 예전에 자주 나오던 얼굴이 요즘 오지 않는다면요. 다음 이야기는 방향이 반대이고, 모르는 사람에게서 옵니다. 서경 열명 편에 은나라 임금 무정의 말이 있어요 — 몽제뢰여양필(夢帝賚予良弼), 꿈에 하늘이 나에게 좋은 보필을 내렸다. 그는 알지 못하는 얼굴을 하나 본 것이었습니다. 그다음에 한 일이 중요해요. 그 얼굴을 그리게 해 나라 안에 돌렸고, 오래 찾은 끝에 부암(傅巖)에서 담을 쌓고 있던 사람을 찾아냈습니다. 그 사람이 재상이 되었고 부열(傅說)이라 불려요. 꿈은 누구도 건네주지 않았습니다. 임금을 찾아 나서게 했을 뿐이고, 그 찾음에는 시간과 품이 들었고 허탕이 될 수도 있었어요. 모르는 높은 사람이 나오는 꿈을 우리는 그 줄을 따라 읽습니다 — 도착한 것이 아니라 가서 확인해 볼 만한 것으로요. 그리고 두보인데, 이쪽이 가장 또렷해요. 시가 자기 독법을 스스로 밝히기 때문입니다. 이백이 귀양 가서 소식이 끊긴 때에 두보가 그 꿈을 꾸고 몽이백(夢李白)을 씁니다. 고인입아몽 명아장상억 — 옛 벗이 내 꿈에 들어왔으니, 내가 오래 그리워했음이 분명해진다. 그는 이 꿈을 이백이 살아 있는지 무사한지에 대한 보고로 다루지 않아요. 자기가 오래 그리워했다는 증거로 다루고, 그다음에 걱정을 하는데 그 걱정도 자기 것입니다. 한시를 통틀어 가장 조심스러운 시인이 멀리 있는 사람 꿈을 그렇게 읽었다면, 이런 페이지가 그보다 더 나갈 자리는 없어요. 우리 쪽 이야기는 가장 불편하고 가장 쓸모가 있습니다. 삼국유사가 조신(調信)을 전해요. 절의 장원을 맡아보던 승려인데, 태수의 딸을 사랑했으나 가질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는 관음 앞에서 몇 해를 그 사람을 달라고 빌었어요. 그러다 어느 밤, 꿈이 그 소원을 들어줍니다. 꿈에서 둘은 혼인해 오십 년쯤을 살아요. 아이들이 생기고, 굶주리고, 한 아이를 길에서 잃어 묻고, 남은 것을 나눠 갈림길에서 헤어집니다. 달리 방도가 없었으니까요. 깨어 보니 머리가 세어 있었고, 그를 붙들고 있던 간절함이 빠져나가 있었어요. 이 꿈이 그를 실제로 이뤄 준 것도, 안 된다고 못 박은 것도 아니라는 데 눈길이 갑니다. 그 간절함을 끝까지 다 살아 보게 하고 그를 그 자신에게 돌려줬어요. 그리고 그가 그다음에 한 일은 짓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움에 대한 꿈이고 정직하게 전해진 이야기이며, 아무것도 예언하지 않아요. 마지막 갈래는 높은 사람이 나 자신인 쪽입니다. 침중기(枕中記)에서 노생이라는 젊은이가 한단의 주막에서 제 삶에 이름이 없다고 한탄하다가 노인에게 베개를 빌려요. 그러고는 잠 속에서 눈부신 한평생을 다 삽니다 — 높은 벼슬, 영광, 몰락, 복귀, 늙음, 죽음. 깨어 보니 아궁이의 노란 기장이 아직 익지 않았어요. 황량일몽(黃粱一夢)입니다.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어요. 전통은 이 이야기를 두 번 하는데, 다른 한 번인 남가일몽은 벌레 페이지에 있고 거기서는 잣대(尺)로 읽습니다 — 그 잣대가 얼마나 못 미더운가로요. 여기서는 축이 달라요. 이쪽은 바라는 마음에 관한 것입니다. 한 가지 포부를 오래 조용히 품어 온 사람에게 실제로 찾아오는 꿈, 그 포부가 하룻밤 안에서 제 길이를 다 살아 보는 꿈이에요. 마지막으로 경계 둘을 그어 둘게요. 이 페이지가 제 것이 아닌 무게를 빌려 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돌아가신, 그리고 내가 실제로 알던 사람이 나오는 꿈은 조상 꿈이고 따로 주소가 있어요. 거기에는 기별과 당부에 관한 독법이 있는데, 화면으로만 아는 사람에게로 그 독법을 옮겨 오지 않습니다. 둘은 같은 사이가 아니고, 옛 책도 하나로 묶은 적이 없어요. 우러르는 사람과 혼인하는 꿈도 결혼 꿈이 아닙니다. 그쪽은 주소가 따로 있고 축이 달라요. 이 글들 가운데 설명에서 한 발 더 나간 것은 하나도 없어요. 그 꿈이 무엇에 관한 것으로 여겨졌는지를 적었을 뿐이지,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지를 말하지 않았어요. 우리도 말하지 않습니다.

갈래마다 다르게 읽어요
좋아하는 연예인·아이돌·멀리서 우러르던 사람이 나온다
두보는 이백이 귀양 가 소식이 끊겼을 때 그 꿈을 꿨고, 시는 이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대로 적어 둡니다 — 고인입아몽 명아장상억, 내가 오래 그리워했음이 분명해진다. 가장 오래된 독법이 이것을 잠든 당신 쪽에 놓아요. 요즘 그 사람이 당신의 마음을 얼마나 차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해 줍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느끼는지는 말하지 않고, 이 페이지의 어느 줄도 산 사람이 무엇을 할지 점치지 않아요.
모르는 귀인·점잖은 사람이 나와 무언가를 일러준다
무정의 모양이에요. 몽제뢰여양필 — 꿈에 하늘이 좋은 보필을 내렸다 — 그러고 나서 임금은 그 얼굴을 그리게 해 나라 안을 뒤졌고, 부암에서 담을 쌓던 사람을 찾아냈습니다. 이 꿈이 한 일은 찾음을 시작하게 한 것이에요. 무언가 도착했다기보다 가서 확인해 볼 만한 것으로 읽고, 가볍게 쥐고 계세요. 이야기 속의 그 찾음은 오래 걸렸고 허탕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스승이나 오래 우러러 온 사람이 나온다, 또는 늘 오던 꿈이 그쳤다
공자는 이 두 방향을 다 읽었어요. 주공이 잠 속으로 오는 것은 그 일이 자기 안에서 살아 있다는 뜻이었고, 꿈이 그친 것은 심의오쇠야, 심하구나 내가 쇠함이여 였습니다. 당신에게 내려진 판정이 아니라, 당신이 따르는 것과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를 읽는 쪽으로 보세요. 그리고 오지 않게 된 꿈은 벌이 아니에요. 전통은 그것을 형벌이 아니라 소식으로 다뤘습니다.
그 사람과 사랑하거나 혼인하는 꿈
삼국유사가 우리 쪽 이야기를 줍니다. 승려 조신은 가질 수 없던 태수의 딸을 두고 빌었고, 그러다 그 사람과의 오십 년을 꿈으로 다 살았어요 — 혼인, 아이들, 굶주림, 한 아이를 묻는 일, 그리고 갈림길에서 갈라서는 일까지. 깨어 보니 머리가 세었고 간절함은 다 빠져나가 있었습니다. 그 꿈이 돌려준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자신이었어요. 이것은 혼인의 조짐이 아니고(결혼 꿈은 주소가 따로 있고 축이 다릅니다), 실제로 살아 있는 누군가에 대한 권리 주장도 아닙니다.
내가 유명해지는 꿈 — 무대, 사람들, 모두가 내 이름을 안다
침중기의 황량일몽이에요. 노생이 주막에서 제 삶에 이름이 없다고 한탄하다 베개를 빌려 잠들었고, 잠 속에서 눈부신 한평생을 다 살고는 기장이 익기도 전에 깨어납니다. 전통은 이 이야기를 두 번 하는데 우리는 둘을 갈라 둬요 — 자매편인 남가일몽은 벌레 페이지에 있고 거기서는 잣대(尺)로 읽습니다. 여기 축은 바라는 마음이에요. 한 가지 포부가 하룻밤 안에서 제 길이를 다 살아 보는 꿈이고, 그 포부를 오래 조용히 품어 온 사람에게 흔히 찾아옵니다.
이 꿈이 대개 하는 일

이 꿈은 옛 책이 상상할 수 있던 것보다 훨씬 흔해졌어요. 한 번도 같은 방에 있어 본 적 없는 얼굴이 이제는 얼마든지 낯익을 수 있으니까요. 그 사람은 내가 있는 줄도 모르는데 나는 그 얼굴과 목소리와 버릇까지 아는 사이 — 이건 정말로 새로운 것이고, 잠은 그것을 따로 된 칸에 넣어 두지 않습니다. 잠은 가장 많이 만져 본 재료로 짓고, 천 번쯤 들여다본 얼굴은 아주 좋은 재료예요. 하필 그 사람이 나온 이유는 대개 그것이 전부이고, 신호가 아닙니다. 그 밑에 깔린 것은 연예인보다 더 단순할 때가 많아요. 알려지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유명한 사람은 자기를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봐 주는 사람이고, 나를 그 곁에 세우거나 나를 그 자리에 앉히는 꿈은 그 사람과는 아무 상관 없이 제대로 보이고 싶은 내 마음 쪽을 만지고 있을 때가 잦아요. 이 꿈에서 따라 나오지 않는 것이 둘 있습니다. 이 꿈은 당신을 채점하지 않아요 —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것은 사람의 아주 평범한 바람이고, 그걸 가져다 쓴 꿈이 당신의 사람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지시도 아니에요. 누구에게 연락하라거나 누구를 기다리라거나, 당신의 밤을 묻지도 않은 사람에 대한 권리로 읽으라고 말하는 줄은 여기 하나도 없습니다.

이 꿈에 대해 자주 묻는 것

연예인 꿈을 꾸면 그 사람과 인연이 있다는 뜻인가요?

아니에요. 전통도 그렇게 읽지 않습니다. 두보는 멀리 있는 벗의 꿈을 꾸고, 그 꿈이 분명히 해 준 것은 자기가 오래 그리워했다는 사실이라고 적었어요. 인연이 예고되었다고 적지 않았습니다. 꿈은 한 사람이 자기가 본 것으로 지어낸 것이라, 그 한쪽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은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산 사람이 무엇을 느끼는지도, 무엇을 고를지도 읽지 않아요. 빠뜨린 것이 아니라 여기서 지키는 규칙입니다.

같은 사람이 며칠째 계속 나와요. 무슨 신호인가요?

되풀이는 대개 재료의 문제예요. 잠은 가장 최근에, 가장 자주 만진 얼굴로 짓습니다. 그러니 날마다 눈앞에 있는 얼굴이 몇 해 전에 본 얼굴보다 자주 나오는 게 당연해요. 이것에 대해 해야 하는 일은 없고, 하라고 말하는 줄도 여기 없습니다. 자꾸 나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면 그 마음은 살살 다뤄 주세요 — 꿈이 다시 온다고 해서 부름은 아니고,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꿈에서 그 사람이 저에게 다정했어요. 아니면 반대로, 저를 밀어냈어요. 그게 그 사람의 진짜 마음인가요?

둘 다 아니에요. 꿈에 나온 그 얼굴은 당신이 본 것으로 당신이 지은 것이니까요. 사람을 들여다보는 창이 아니고, 그 사람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다정한 쪽에도 차가운 쪽에도 똑같이 해당하는 말이라 분명히 적어 둘게요 — 우러르던 사람이 나를 밀어낸 꿈은 그 사람이 내린 판단이 아니고, 당신이 내린 판단도 아닙니다. 잠든 사이에 일어난 일은 결정이 아니에요.

옛 해몽책에 귀인을 만나는 꿈 항목이 있다던데 맞나요?

이 페이지에 있는 독법은 어디서 왔는지 다 댈 수 있어요 — 주공은 논어 술이, 부열은 서경 열명, 그리워했다는 줄은 두보의 몽이백, 조신은 삼국유사, 기장이 익지 않았다는 대목은 침중기입니다. 귀인은 이 문화에 실제로 있는 칸이고 지금도 일상에서 쓰는 말이에요. 다만 요즘 널리 도는 말, 꿈에서 귀인을 만나면 재물이 들어온다는 줄은 옛 문헌까지 거슬러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페이지에 올리지 않았어요. 칸 이름을 댈 수 있다는 것과, 그 뒤에 그 칸에 들어온 내용의 출처를 댈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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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주소를 가진 다른 꿈

여기 적힌 것은 한국 전통 해몽의 독법이지 예언이 아닙니다. 여기서 당신의 미래를 계산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런 척하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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